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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구의 역사 – 지구의 깊은 속에서부터 표면까지의 생생한 여행

책 : 살아있는 지구의 역사 / 리처드 포티

주로 좋아하는 책들만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편중된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독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보고자 적어도 열권에 한두권 정도는 내가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골라 읽어왔는데 주로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여기에 속했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런 작업을 통해서이다.

의도적으로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책 중에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딱 들어왔고 몇 개의 리뷰 들을 읽어보니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이 ‘자연사 박물관’이다. ‘살아있는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던 곳은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나는 다소 감정에 충실한 사람인데 이곳에 가면 다양한 과거의 생물들과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고 앞에 서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빠져드는 느낌이 있었다. 여기에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추가하면 그 중 일부는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책을 썼을까…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선임 고생물 학자라는 설명이 있었다. 왠지모를 반가움을 느꼈다. 비록 이 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정말 좋은, 잘 쓰여진 책이라는 이야기들에 나의 이런 반가움이 더해져 결국 구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충격이었다. 삼사십페이지에 이르는 1장을 다 읽고 났는데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2장을 앞에 두고 문득 ‘내 가 지금까지 뭘 읽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 정신을 차리고 1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쉽게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헝클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내가 무엇을 읽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눈은 그냥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생소하다… 지층, 암석, 그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들… 낯선 단어들이 처음에는 적당하게 한두개 정도로 시작하더니 어느순 간 이것저것 나와 뒤섞여 버렸다. 또 이야기의 진행도 한방향으로 주욱 나가는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그 큰 줄기를 따라 이야기가 차근차근 진행되야 하는데 일단 그와 관련된 자잘한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또 다른 큰 줄기의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에 또 자잘한 이야기들이 덧붙고 또 다시 다른 큰 줄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장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한두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더 복잡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늦은 저녁에 읽기 시작했던 터라 졸리기도 해서 일단 책을 덮었다. 다음날 다시 읽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머리부분의 ‘감사의 말’에 보면 이 책은 분명 ‘대중’을 위해 쓰인 ‘쉬운’ 책임에도 내게는 상당히 복잡하고 정리가 안되는 책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내용은 참 좋아보이고… 리처드 포티의 자연사박물관에서의 이력은 역시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 고…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 읽기 시작했다.

왠지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뜨거운 암석들(8장)’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처음에는 쉽게 나가다가도 어느 순 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해서 중간정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그제서야 비로소 뭔가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신기했다. 설명은 힘들고 비유를 들어보자면 이 책은 지질서라기 보다는 상당히 ‘디테일한 여행 디테일한 여행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더 빨리 이 책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 까도 싶다.

인도의 데칸 고원과 관련된 지질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저자… 저자는 그곳으로 가는 길부터 실감나게 묘사한다. 또 그곳 에는 어떤 볼거리들이 있는지 마치 잘 정리된 여행책자에서나 봄 직한 내용들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한결같다.

모든 것의 기본은 결국 ‘지질’인 것이다.

‘지질은 보이지 않게 지배한다.’

몇 페이지에 나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한 줄로 설명한 문장이 아닐까 싶어 메모해 두었던 부분이다. 그 지역(결국은 지질을 기반으로)에서 이루어진 인류의 문화… 생활, 조각, 예술품들… 이 모든것에는 보이지 않는 지질의 힘이 작용하고 있던 것이다.

특이한 지질은 그곳만의 특수하고 다양한 예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는 어떤 지역의 문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단순하게 강이 있었기에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거나 어떤 지형(지질이 아니라)이었기에 그 곳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발전시켜나가게 되었다는 식의 (어떻게 보면) 피상적인 정보만을 이야기해왔는데 이 책은 보다 근원적인 이유를 지질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8장을 다 읽고 난 후에는 11장의 ‘표면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제서야 저자의 서술형식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이런 서술에 익숙하지 못했는데 가뜩이나 생소한 단어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다보니 더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적응하고 나니 그제서야 비로소 빠져들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다음 한 일은 다시 1장으로 돌아가 차례대로 마지막까지 읽어간 것이다.

우리는 탐험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탐험이 끝날 때면

출발한 곳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마지막은 T.S. 엘리엇의 ‘리틀 기딩(Little Gidding)’ 이라는 시로 멋지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감동의 여운을 느꼈던 순간이 다. 드디어 길고 방대하고 흥미로운 여정이 끝났는데 내가 선 곳은 다시 내가 출발했던 그 곳. 그러나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된 새로운 곳… 이 시의 원래 의미가 무엇이든, 저자가 의도했던 것이 설령 이와 다를지라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지구의 깊은 속에서부터 표면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지질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다양한 학계의 논쟁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세계의 다양한 장소들을 디테일하고 실감나게 여행하면서 쓴 여행서를 읽는다는 기분으로, 그리고 목차를 보고 가장 끌리는 부분부터 읽어나간다면, 적어도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보다 빨리 이 책의 메세지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경우에만 말이다)

한번만으로는 그 내용이 방대했고 또 다루는 것들도 많았기에 솔직히 머릿속에 남은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중간중간 메모해 둔 내용들과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그림)형식으로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것 뿐.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읽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목차를 다시 보면서 중간중간 재미있었던 부분들과 몇가지 정리가 되지 않았던 논쟁이나 암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찾아가며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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