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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 – 동양의 탈무드

책 : 쟁경 / 자오촨둥

책을 막 읽고 난 후의 감정은 일주일, 한달,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보거나 두번째 읽게 될 때 보면 다분히 과장된 면이 없지 않은것 같다. 좋은 쪽으로든 그렇지 않은 쪽으로든 말이다. 따라서 조금 양보하여 ‘동양의 탈무드, 쟁경’ 이라는 제목을 달아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탈무드보다 낫다고 적고 싶고 동양이라고 한정짓고 싶지도 않지만…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대화가 있다. 두 개의 생각이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은 늘 똑같으란 법이 없다. 의견이 다르면 이들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논쟁이 성립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논쟁은 필연적이다.

서점에 가 보면 토론의 기술이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법, 기타 다양한 화법과 관련된 책들이 있다. 일부는 베스트셀러도 되었다. ‘쟁경 (자오촨둥, 민음사)’ 에는 이 모든 책들을 어우르는 기본이 담겨있는 것 같다.

‘쟁경 (자오촨둥, 민음사)’ 에는 이 모든 책들을 어우르는 기본이 담겨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읽던 무협지를 비유 해보자면 이 책은 김용의 영웅문이고 다른 책들은 거기서 파생한 자잘한 무협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만 잘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별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쟁들이 이야기된다. 그 주제는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 같다. 정치문제를 연상시킬 수도 있고 국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관해서는 개인과 다수(공리주의), 법치와 도덕 등 철학에서나 다룰 법한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 공자와 묵자처럼 많이 들어보았던 인물들 뿐 아니라 귀곡자, 진번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떤 답을 제시해주고 있지는 않다. 생각… 정말 다양하고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보면 사람들마다 그 중에 특히 더 옳다고 생각하는게 있을 수 있는데 저자와 옮긴이 모두 묵자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듯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책이 편향되게 쓰여지지는 않았으니 오해는 없었으면 싶다. 소개는 공정하고 다루는 범위는 방대한 가운데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어려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 가운데 각 이야기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점은 또 하나의 매력이다.

경험한 만큼 보이는 책인 것도 같다.

여러명의 논객들이 나오다 보니 이런 호기심도 들 것이다. 뛰어난 논객과 논객이 만나 논쟁을 하면 어떨까?

이런 호기심을 정말 흥미롭게 채워줄 수 있는 내용도 있는데 ‘염철회의’를 다룬 장이다(페이지 427 ~). 당시 국가는 소금과 같은 생활필 수품을 국가가 전매하여 관리하였는데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었다. 이것을 철폐해야 하는가 계속 존속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대부’와 ‘문학’을 중심으로 양쪽 세력이 논쟁을 하는데 상당히 재미도 있다.

‘대부’는 존속을 유지하기에 조정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무제 이야기로 폐지를 반박하는데 그 내용은 국가경영과 안보에 있어 상당히 실리적인 면을 중시한 것 같다. 이에 ‘문학’은 공자 이야기를 들어 반박하는데 공자답게 인과 의를 강조하며 소금전매제의 존속이 장구한 계책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이는 대부의 주장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대부는 다시 진 상군의 (오늘날로 치면) 국영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를 들어 국가의 소금전매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러자 문학은 문제의 이야기를 들어 그 이야기는 맞긴 하지만 지금의 시기에는 적용되기 힘들다고 반박한다. 아울러 진 상군의 이야기에서 단점을 찾아내어 논쟁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대부와 문학이 언급하고 있는 진 상군에 관한 이야기는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과 결과(장기적인 결과)를 바라보는 둘의 관점은 극과 극이었다. 그럼에도 모두 반박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가운데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고 자신의 주장을 더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는 법가와 유가로 대변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자신의 주장에 이용한다. 공리주의, 덕치주의… 다 그런 것들이다. ‘염철회의’ 를 다룬 장은 토론의 진수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들의 논쟁은 예리하고 절묘하며 날카롭다.(시대별, 인물별 순으로 구성되었다. 목차를 보고 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가며 읽기에도 편하다)

풍부한 사례를 많이 아는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 적시적소에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어떻게 배치 (구성)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의 헛점을 파고드는 법도 필요하고 지금 상황에서 내 주장을 더 강하게 언급할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 ‘쟁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논쟁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이 책의 첫 이야기에 나오는 ‘관중’에 관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페이지 16~). 마지막 부분이었던가… 관중이 죽으며 제나라 환공에게 어떤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아기까지 죽여 환공에게 먹이게 한 요리사의 행위를 환공은 그만큼 충성심이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관중은 반대로 해석한다. 자기 자식까지 죽이는 사람이 어떻게 군주를 진정으로 아끼겠냐며 멀리할 것을 권한 다.

군주를 위해 스스로 환관이 되어 궁녀를 다스리는 수조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찌 군주를 진정으로 아끼겠냐며 멀리하라고 권유한다. 결론적으로 관중이 옳긴 했다. 관중이 경계하라고 한 사람들의 반란으로 환공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도, 저자도, 모두 관중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평안을 버리고 군주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충신들 말이다. 여기에 관중의 논거를 대 입하면 어느 하나 믿을 사람이 없게 되어버린다. 가족보다 군주의 안위를 걱정하여 개인의 희생을 선택한 신하도 못 믿을 놈으로 전락해버린다. 더이상 충신이 아닌 것이다. 말이 안된다. 그럼에도 관중은 왜 그 사람들을 콕 짚어가며 경계하라고 말했을까?

내 생각에는 그 사람들에게는 이미 어떤 믿지못할 행동들이 있어왔던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 사람들의 됨됨이나 평소의 언행에서 믿지 못할 무언가를 발견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관중은 그런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해가며 그러니 이 사람들의 행위가 비록 충성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을 충성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달라고 권유해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하였는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찌 군주를 위해 충성하겠냐고 말하고 자기 자식까지 죽이는 사람이 어찌 군주를 진정으로 아끼겠냐고 말했다.

군주로써는 충분히 반박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반박의 여지가 충분한 이야기들 뿐인 것이다. 그러나 관중의 말이 결국 사 실로 드러난다면 어떨까? 그의 비유가 어찌되었든 그것은 곧 관중의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자신만이 아는 사실은 살짝 덮어두고, 단지 자신에게 어떤 깊은 통찰력이 있는것처럼 아리송하게 말한게 아닌가도 싶다. 죽으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생전에 한 다른 말들을 읽어보면 충분히 그렇게 짐작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관중의 예는 통찰력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논변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용된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중의 됨됨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 내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냥 이렇게도 생각해보았다고만 이해해 주었으면 싶다. 내가 관중이라면, 그리고 정말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모셔왔던 환공의 성격을 보아 환공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었을 것 같은데 관중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뒷면의 ‘주’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위의 내용만 살짝 읽어봐도 알 수 있듯이 ‘책 속의 책’ 이라는 느낌으로 나름 재미있게 즐겼던 부분이다. 본문을 읽어가며 ‘주’가 나올 때마다 일일이 찾아가며 읽지는 않았고, 다 읽고 난 후에 그냥 부록 하나 더 본다고 생각하고 주욱 읽어나갔는데 뭔가 모자이크가 연결되는 느낌도 들고 재미도 있었다.)

논변의 체계적인 기술 또한 엿볼 수 있다. ‘귀곡자’와 관련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페이지 258~). 귀곡자는 논변의 기 교를 상당히 심도있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그 결과를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자신의 실력과 계략을 노출시키 도록 만드는 패합술, 어떤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얻는 반응술, 상대방과의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내건술, 상대방을 제어하는 비겸술 등이 그것이다. 뭔가 이론적이라 따분할 것 같지만 책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쉽게 적어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이론적인 것 같은 부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던 이유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를 느끼게 한 이야기도 있다. 구양수의 ‘붕당론(페이지 699~)’이 그것인데 장문의 글임에도 그 구성력과 호소력은 내가 아무리 우매한 황제라고 해도 이 글을 읽고 어찌 깨우침 이 없을 수 있을까!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글이었다.

책을 읽으며 점점 아쉬워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논쟁, 논변가들의 모습이 뒤로 갈 수록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 부의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민간(?)에까지 논쟁이 허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시기인지라 이 시기에 가장 많고 다양한 논객들이 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위,진 남북조, 진, 한, 당, 송, 원, 명 청 등으로 이어지는 2부, 3부, 4부로 갈 수 록 나라는 (상대적으로) 점점 안정되고 논객의 범위도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궁중으로 한정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나중에는 신하가 군주에게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시대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논쟁다운 논쟁이 일어날 기회조차 줄어 들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즉 논객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이유는 아래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하여 적어보았다.

‘상소문을 올려도 돌을 바다에 던진 것만 같다.’ (페이지 870)

개인적으로 욕심이 있다면 민음사에서 이 책 ‘쟁경’을 4권으로 나누거나 2~300페이지짜리 책 한권에 들어갈 만한 내용만을 추려내어 청소년용으로 또 하나의 쟁경을 출판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행간의 의미가 청소년기에 얼마나 눈에 띄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탈무드는 또 어떤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메세지를 이해했다고 해도 ‘와닿은’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탈무드를 수십번 읽었지만 깨달음이라고 할 만한 것은 느끼지 못하면 자랐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좋은 내용이었는지를 알았을 뿐이다.

쟁경의 메세지도 그런 수준(?)이 아닐까 싶지만 어릴때부터 옆에 끼고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싶어 이런 이야기를 해 보았다. 삼국지와 비교해 보아도 삼국지 열번 읽는 것보다 이 책 한번 읽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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